실업률이 떨어져도 물가가 안 오르면, 정말 이론이 죽은 걸까
필립스 곡선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실업률이 떨어져도 물가가 예전만큼 오르지 않을 때마다 등장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역관계가 흐려졌다는 관찰만으로 이론 전체의 오류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과 노동시장 조건이 달라지면 관측되는 관계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경로를 이론적으로 살펴보며, 오늘날 어느 요인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를 추정하지는 않습니다.
임금이 오르는 관계와 물가가 오르는 관계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자 A. W. 필립스가 제시한 원래의 곡선은 실업률과 임금상승률 사이의 역관계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관계와는 설명 대상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필립스가 관찰한 대상은 임금이었지 소비자물가가 아니었습니다.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은 서로 관련되지만 같은 지표는 아니므로, 어느 관계가 예전처럼 맞지 않는다는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높은 인플레이션율에 기대가 적응하면 단기 효과도 달라집니다
밀턴 프리드먼과 에드먼드 펠프스는 필립스 곡선에 기대인플레이션을 반영했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물가상승률입니다. 이 설명에서는 물가가 노동자의 예상보다 빠르게 오를 때 실업률이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노동자가 높아진 물가상승률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처음의 고용 효과도 달라집니다.
프리드먼·펠프스의 기대를 반영한 설명에서는, 인플레이션율을 더 높은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도 기대가 조정되면 실업률은 자연실업률로 돌아갑니다. 자연실업률은 이 이론에서 실업률이 되돌아가는 기준점입니다. 따라서 더 높은 일정한 인플레이션율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실업률을 그 기준 아래에 영구히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율이 계속 높아지는 가속과 구분해야 합니다.
이 틀에서 기대 등 관련 조건이 유지되는 단기에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역관계를 보일 수 있습니다. 평균 인플레이션율의 지속적인 변화에 기대가 적응하면 단기 곡선도 이동합니다. 가로축에 실업률, 세로축에 물가상승률을 놓으면 장기 곡선은 자연실업률에서 수직선으로 표현됩니다. 서로 다른 일정한 인플레이션율이 같은 장기 실업률과 양립한다는 뜻입니다.
NAIRU는 물가상승률의 안정에 초점을 맞춘 표현입니다
물가상승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과 양립하는 실업률을 NAIRU(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즉 물가상승률을 가속하지 않는 실업률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말은 물가 수준이 고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물가상승률이 일정하다는 뜻입니다.
자연실업률이 경제가 되돌아가는 이론적 기준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NAIRU는 인플레이션의 안정과 양립하는 실업률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개념을 무조건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참고한 경제학 해설은 많은 경제학자가 NAIRU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로, 그 실업률이 사회적으로 최적이거나 고정불변이거나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듭니다. 그렇다고 자연실업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 최적이나 불변성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곡선의 이동과 관계의 약화는 구분해야 합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단순한 역관계가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관찰만으로 기대를 반영한 필립스 곡선 자체가 틀렸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조정되면서 곡선이 이동하는 현상과, 같은 조건에서 관계 자체가 약해지는 현상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의 설명력을 평가하려면 기대인플레이션과 기준이 되는 실업률 수준 같은 관련 조건을 함께 고려하고, 관측된 결과가 모형의 예측과 실제로 부합하는지를 별도로 검증해야 합니다. 조건에 따라 곡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만으로 이론이 옳다고 입증되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시장의 기준선과 임금 결정 여건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는 「Unemployment」에서 겉으로 드러난 자연실업률 하락의 일부가 일자리 사이에 있는 사람의 감소와 일자리 이동 기간의 단축에 관련됐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이는 당시 노동시장에 대한 해석입니다. 정확한 집필 시점을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글에서 말하는 최근의 변화를 2026년 상황으로 옮겨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추측이 가리키는 경로는 일자리를 옮기는 과정의 실업이 줄면 기준 실업률도 낮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달라지면 같은 관측 실업률이 뜻하는 노동시장 여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노동시장 여유란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뜻합니다.
같은 글은 국제 경쟁이 고임금 산업의 임금 인상을 억제해 왔다고도 설명합니다. 이 서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경로는 경쟁 여건이 임금 인상 압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입니다. 같은 실업률에서도 임금 결정 여건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글의 해당 설명만으로 실업률에 대한 효과와 비교하거나 현재의 효과 크기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기준 실업률이 높아질 가능성을 다루는 논쟁도 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실제 실업률이 높은 상태로 오래 머물면 NAIRU 자체가 높아진다는 이력효과 가설을 제기합니다. 이력효과는 과거의 실업 경험이 이후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남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경제가 하나의 고정된 기준 실업률로 자동 복귀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노동시장 구조 변화는 관계가 달라지는 하나의 경로일 수 있지만, 유일한 설명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닙니다. 구조 변화 없이도 기대의 조정으로 단기 관계가 달라질 수 있으며, 기준 실업률이 이동했다는 설명을 곧바로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다는 뜻으로 읽어서도 안 됩니다.
고용 지표 기사에서 함께 확인할 것
고용·물가 뉴스를 읽을 때는 먼저 기사가 설명하는 상승률이 임금인지 소비자물가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비교 대상 시기와 지금 사이에 기대인플레이션이 달라졌는지, 일자리 이동 방식이나 임금 결정 여건이 달라져 같은 실업률이 다른 의미를 가질 근거가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실업률이 낮아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판단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 확인 과정은 기사 설명을 점검하는 방법이며, 물가나 정책금리의 방향을 예측하는 규칙은 아닙니다.
필립스 곡선의 설명력은 조건을 포함해 평가해야 합니다
필립스 곡선의 설명력 문제는 이론의 오류와 노동시장 변화 중 하나만 고르는 문제로 풀리지 않습니다. 기대가 조정되면 더 높은 일정한 인플레이션율도 실업률을 영구히 낮추지 못한다는 것이 여기서 살펴본 이론의 설명입니다. 노동시장 변화 역시 기준 실업률과 임금 결정 여건을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업률과 물가의 단순 상관을 넘어 관련 조건을 반영한 관계가 실제 관측과 맞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다만 참고한 경제학 해설만으로는 오늘날 설명력 변화의 주원인이나 각 경로의 기여도를 판정할 수 없습니다.
참고 자료
- Phillips Curve – The Concise Encyclopedia of Economics
- Unemployment – The Concise Encyclopedia of Economics
- Monetary Policy – The Concise Encyclopedia of 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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