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많이 찍으면 물가가 반드시 오르는가 — 화폐수량설의 식과 2007년 4분기~2020년 2분기 통화량·물가의 괴리
“중앙은행이 돈을 더 찍어내면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경제 뉴스에서 당연한 공식처럼 쓰입니다. 그런데 2007년 4분기부터 2020년 2분기까지 유로 지역과 미국의 실제 통화량·물가 자료를 나란히 놓고 보면, 본원통화가 몇 배로 불어난 만큼 물가가 따라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은 화폐수량설의 식이 통화량과 물가를 어떤 조건으로 연결하는지, 그리고 이 기간의 숫자가 왜 그 조건과 어긋나 보이는지를 차례로 확인합니다.
화폐수량설이 연결하는 네 가지 변수
화폐수량설의 기본 관계식은 M×V=P×T로 쓸 수 있습니다. 프랑스 중앙은행 자료는 이 식에서 M을 통화량, V를 화폐유통속도, P를 전체 물가수준, T를 거래량으로 설명합니다.
이 식만으로는 네 변수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자료는 분석을 위해 전제를 둡니다. 거래량 T는 직접 관찰하기 어려워 국내총생산(GDP)을 대리 지표로 쓰고, 유통속도 V는 일정하거나 균형값으로 수렴한다고 가정합니다.
식은 통화량이 늘면 물가가 반드시 오른다고 말하는가
식을 P=(M×V)/T로 바꿔 쓰면 답이 더 분명해집니다. 통화량 M이 늘어도 유통속도 V가 충분히 낮아지거나 거래량 T가 충분히 늘어나면, 물가수준 P는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V와 T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면 M의 증가는 P에 더 크게 반영될 수 있습니다.
즉 식의 구조상 M이 늘어도 V나 T가 함께 달라지면 P가 반드시 같은 비율로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는 식에서 도출되는 조건부 관계이며, 실제 특정 시기에 각 변수의 변화가 물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계산한 결과는 아닙니다.
2007년 4분기~2020년 2분기, 유로 지역과 미국의 실제 숫자
자료의 도표에 따르면 이 기간 유로 지역의 본원통화(M0)는 329.3%, 광의통화(M3)는 60.5%, 소비자물가지수(HICP)는 17.2% 늘었습니다.
같은 도표가 보여주는 같은 기간 미국의 수치는 본원통화(M0) 497.5%, 광의통화(M2) 143.6%,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19.3% 증가입니다.
유통속도는 같은 기간 어떻게 움직였나
프랑스 중앙은행 자료는 2000년대 초부터 유로 지역과 미국에서 화폐유통속도가 하락했다고 설명합니다. 자료는 이와 함께 단기·중기에는 본원통화와 통화량 사이, 통화량과 전체 물가수준 사이의 관계 자체가 약해졌다고 평가합니다.
이 격차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2007년 4분기부터 2020년 2분기까지의 유로 지역과 미국 자료는 본원통화 증가가 같은 폭의 광의통화 증가나 물가지수 상승으로 기계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는 세 지표의 누적 증가율을 비교한 해석이며, 이 수치만으로 통화 증가가 물가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하거나 그 격차의 원인을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통화량 뉴스를 읽기 전에 확인할 것
중앙은행이 돈을 풀었다는 보도를 볼 때는 그 돈이 본원통화인지 광의통화인지를 먼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지표의 증가율 자체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는 화폐유통속도와 거래량이 같은 기간 각각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두 지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통화량 증가가 물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까지 정확히 가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리하면, 화폐수량설의 식은 유통속도나 거래량이 함께 달라지면 통화량이 늘어도 물가가 반드시 같은 비율로 오르지는 않는다는 조건부 관계이며, 2007년 4분기부터 2020년 2분기까지 유로 지역·미국의 자료는 본원통화 증가폭에 비해 광의통화와 물가지수가 훨씬 작게 늘었다는 격차를 실제로 보여줍니다. 이 격차의 원인을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으므로, 다음 통화량 뉴스를 접할 때는 본원통화인지 광의통화인지, 유통속도와 거래량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판단 기준입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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